2학년 4반

2학년 4반 화이팅!-!

  • 선생님 : 이성현
  • 학생수 : 남 0명 / 여 23명

통역사

이름 이성현 등록일 19.03.10 조회수 21

다른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은 긴박하고도 생생한 전쟁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으로 CNN 생중계를 시도했다. 이때 사람들은 CNN 미국 기자가 하는 말을 신기하게도 단 몇 초만에 한국말로 바꿔 전달해주는 생소한 목소리를 접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일반 사람들은 잘 몰랐던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통역사는 속도가 생명인 ‘언어의 마술사’다. 어순과 문법이 전혀 다른 언어와 언어 사이를 오가며 빠르고 정확하게,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아내야 한다. 국제회의, 정상회담, 기업간 거래 등 외국인과의 정밀한 소통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들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들의 말 한마디에 거래가 성사되기도 하고, 이들의 말 한마디에 국가 간 관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 부담감은 크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다. 아슬아슬한 매력을 가진 통역사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자.

통역에도 종류가 있다

김호숙 통역사가 4일 한 외국계 IT 업체의 신제품 출시 행사장에서 순차통역을 하고 있다.

보통 ‘통역’하면 동시통역만을 떠올리지만, 통역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먼저 동시통역은 각종 국제회의나 세미나 등에서 연사의 말을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통역해 주는 것을 말한다. 국제 콘퍼런스 등에서는 참석자들에게 무선 통역기를 나눠주는데 이를 귀에 꽂으면 동시통역사의 통역을 들을 수 있다. 행사장 한쪽 편에 놓인 동시통역 부스 안에는 반드시 2명의 통역사가 짝을 이뤄 들어간다. 동시통역은 모든 통역 중에서도 초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30분 이상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외에 순차통역(발표자가 연설을 하면 옆에서 바로 발표자의 말을 이어 통역하는 것), 위스퍼링 통역(동시통역에 필요한 헤드셋이나 통역 부스 없이 한두 사람 뒤에서 속삭이듯 실시간 통역해 주는 것), 수행통역(통역이 필요한 사람을 따라 다니면서 의사소통을 돕는 것) 등이 있다.

‘물 위의 백조’ 통역사

흔히들 통역사를 ‘물 위의 백조’라고 표현한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직업이지만, 물 아래에서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물길질을 해야 한다. “통역 연습을 하루만 안 하면 본인이 알고, 이틀 안 하면 상대방이 알고, 열흘 안 하면 만인이 안다”는 말은 통역업계에서 격언과 같은 말로 전해진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국제회의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특히 IT, 인권, 생태, 금융,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술대회, 국제회의 등을 통역해야 하기 때문에 온갖 정보와 상식들을 섭렵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예를 들어 동물과 관련된 국제 세미나를 통역할 때는 흰머리 갈매기부터 시작해 온갖 철새의 이름들과 그들의 포식자 이름까지 하나하나 알아둬야 한다. 이 때문에 통역사들은 통역 의뢰가 들어오면 미리부터 관련 분야의 책이나 논문 등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한다.

2004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후 10년 째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김호숙 통역사는 “같은 영어라도 출신 국가에 따라 억양이나 액센트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유명한 연사일 경우에는 그의 말버릇을 알아두기 위해서 유튜브 등에 들어가 기존의 인터뷰 영상 같은 것을 미리 체크해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새는 추세나 트렌드가 너무 빨리 변해서 일이 없는 평상시에도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신문은 물론 수시로 관련 최신회의나 자료들을 꼬박꼬박 찾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담과 긴장, 그러나 짜릿한 스릴과 성취가 있다

동시통역 논란을 빚었던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번역자는 반역자다(Translators, traitors)’라는 말이 있다. 문장을 두고두고 뜯어본 후 옮기는 번역이 이럴 정도인데, 말을 듣자마자 찰나의 순간에 이를 통역해야 하는 동시통역은 오죽할까. 최고 실력의 통역자가 붙는 정상회담에서도 종종 이런 실수가 나온다. 1977년 폴란드를 방문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폴란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통역사가 이를 “폴란드 여인에게 을 느낀다”고 오역해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2007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역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정상외교에서는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 조차도 큰 의미를 갖는데, 미국측 통역이 ‘평화조약(a peace treaty)’이라는 중요한 단어를 빼놓고 통역해 회담의 분위기가 꼬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통역이 가진 중요성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반대로 매끄러운 통역 덕분에 오히려 갈등이 봉합되는 사례도 있다. 김 통역사는 “적대적 관계에 놓인 기업들 간의 대화를 통역하던 통역사가 양 측의 말을 매우 잘 전달해서 두 업체의 관계가 오히려 개선된 사례도 있었다”면서 “물론 통역은 정확히 말을 옮기는 것이 기본이지만, 언어 뿐 아니라 문화가 다른 양쪽에 다리를 놓는 역할이기도 하다.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잘 몰라서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있고 반대로 한국인 역시 외국 문화를 몰라 서로 갈등이 격화되는 부분이 있는데 매끄러운 통역은 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통역은 실수의 위험이 늘 상존하기 때문에 부담감과 긴장감이 큰 일이지만, 이럴 때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또 통역사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현장을 누비고, 유명 인사들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제 인권단체의 통역을 하면서 감옥에 직접 들어간다거나, 때론 의학 콘퍼런스 통역을 위해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한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국제적 인사들을 수행하면서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도 통역사란 직업의 매력이다.

어떤 사람이 통역사가 되나

한·일 축구산업교류 포럼’에 참석한 한 참가자가 귀에 무선 통역기 이어폰을 꽂고 동시통역사의 말을 듣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반드시 영문과를 나오거나 어린 시절 외국에서 산 경험이 있어야만 통역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통역사 역시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에선 국문과를 전공했다. 통역은 단순히 네이티브처럼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두 언어를 처리할 수 있는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김 통역사는 “같은 뜻을 가진 문장이어도 감칠맛 나는 말로 바꿀 수 있는 언어적인 감각은 일정 부분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면서 “통역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또 무대에 서야 하는 경우도 많고 말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기 때문에 소심한 성격보다는 역동적인 상황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통역사가 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외대, 이화여대, 서울외대, 선문대, 계명대, 한동대에서 운영하는 통번역대학원 뿐 아니라 최근 중앙대 국제대학원(전문통번역학과), 고려대 통번역석사과정 등이 새로 생겨났다. 입학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나뉘는데 통번역대학원 수가 많지 않고 뽑는 인원도 매우 제한적이어서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달할 정도로 관문이 좁은 편이다.

통역사에 대한 대우와 전망은

통역사의 고용형태는 인하우스(In-House)와 프리랜서 형태로 나뉜다. 인하우스는 기업이나 기관에 취업해 그 업체의 통역만을 전담하는 경우다. 고용형태가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업무의 역동성은 떨어진다. 반대로 프리랜서는 고정적으로 일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프리랜서는 업계에서 형성된 인맥이나 에이전시를 통해 통역일을 의뢰받는다. 통상적으로 프리랜서 통역사가 받는 통역비 요율은 하루 6시간 미만을 기준으로 90만원이며 6시간을 초과할 경우 추가 수당이 붙는다.

앞으로의 직업 전망은 어떨까. 김 통역사는 “통역 시장 자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통역이 필요 없는 영어 능통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변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전문 통역은 단순히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어 능통자가 많아진다 하더라도 통역사에 대한 수요는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회의 자리도 늘어나고 있고, 또 국가적으로 컨벤션 산업을 장려하고 있기 때문에 통역사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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