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고 합니다.
아직은 여리고 어린 꽃들이 5학년 4반에 모였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꽃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함께」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자신의 아름다움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인정하고 이해함을 바탕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5학년 4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사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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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21 | 등록일 | 20.11.27 | 조회수 | 54 |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율곡 이이를 낳은 훌륭한 어머니 심사임당. 48세를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천재 화가로서, 그리고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사임당은 아들 없는 집안의 다섯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시와 글씨, 그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현모양처로 인품과 재능을 겸비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임당은 당호이며, 사임당 외에도 시임당·임사제라고도 하였다.사임당이 결혼한 것은 1522년인 19세 때로 남편은 덕수 이씨 가문의 이원수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다.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예술가로서 대성할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성격만큼이나 그림·글씨·시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림은 풀벌레·포도·화조·어죽·매화·난초·산수 등이 주된 화제이다.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산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뚫어질 뻔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윤종섭은 이이와 같은 대성인이 태어난 것은 태임을 본받은 신사임당의 태교에 있음을 시로 읊어 예찬하였다.그리고 신사임당의 예술성을 보다 북돋아준 것은 남편이었다. 신사임당이 친정에서 많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도량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은 신사임당의 그림을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정도로 아내를 이해하고 또 재능을 인정하고 있었다. 신사임당은 실로 현모로서 아들 이이는 백대의 스승으로, 아들 이우와 큰딸 이매창은 자신의 재주를 계승한 예술가로 키웠다. 작품으로는 「자리도」·「산수도」·「초충도」·「노안도」·「연로도」·「요안조압도」와 6폭초서병풍 등이 있다. 1550년(명종 5) 이원수는 음서로 관직에 올라 한강의 수운을 담당하는 수운판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이듬해 봄에 삼청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해에 이원수는 이선과 이이 두 아들과 함께 조운의 일로 평안도로 갔다. 그러나 그 사이에 병이 난 신사임당은 음력 5월 17일 새벽에 사망했다. 이이의 〈선비행장〉에는 그날 관서 지방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서강(西江)에 도착했는데, 신사임당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기 전에 행장에 있던 유기그릇이 모두 빨갛게 변하는 괴이한 일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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