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1반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밝은 우리반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스스로 모두 다 함께

서로 사랑하며 즐겁게 배우는 4학년 1반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즐겁게 배우는 4학년 1반
  • 선생님 : 김인자
  • 학생수 : 남 12명 / 여 14명

채만식

이름 김대석 등록일 19.05.17 조회수 49
태평천하>가 있다.
채만식(蔡萬植)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극작가, 문학평론가, 수필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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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불안한 사회를 배경으로 지식인의 불우한 삶을 풍자한 소설과 희곡을 썼다. 본관은 평강. 호는 백릉(白菱)·채옹(菜翁). 아버지 규섭(奎燮)과 어머니 조우섭(趙又燮) 사이의 9남매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1914년 임피보통학교(臨陂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18년 경성에 있는 중앙학교(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재학중에 은선흥(殷善興)과 결혼했으며,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부속 제1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다. 재학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했으며, 1923년 귀국해 다시 돌아가지 않자 이듬해 장기결석으로 퇴학처분 되었다.

1924년 경기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했고, 1925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1년 여 만에 그만두었다. 1930~33년 〈개벽〉, 1937년 조선일보사에서 근무했으며, 그뒤 개성·안양 등으로 이사해 가난하게 살면서 창작에 전념하다가 1945년 4월 고향에 돌아왔다. 8·15해방이 되자 서울로 올라와 잠시 머물렀으며 1946년 이리시 고현에 내려와 있던 작은 형 준식의 집에 기거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되어 비참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에도 창작의욕은 대단하여 이때 많은 작품을 썼다. 1950년 폐결핵으로 죽었으며,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계남리 선산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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