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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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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효린 | 등록일 | 22.10.09 | 조회수 | 49 |
줄거리: 이 아이는 열세살때 자신의 얼궅을 처음봤다. 그런데 그얼굴은 볼품없고 못생겼다. 아바지와 나는 암자 앞으로 갔다. 스님은 나에게 보부상인 아버지를 닮아 장사를 잘하냐 물었다. 나는 장터어서 노래를 불러 손님을 잘모은다고 말하며 노스님께 노래를 불러드렸다. 노스님은 내노래에 약이. 들어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린 노스님의 말을 끝으로 암자를 떠났다. 산을 내려가는동안 산에 왜 다녀왔냐 물었다. 내가 다니묻자 아버지는 다른 할일이 있어 온것이라 말씀했다. 아버지는 한사람을 구하거나 때로는 세상을 구한다 말했다. 아버지와 경복궁을 지날때 일본 군사들이 보였다. 이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송례문에 멈춰 송례문이 보기 좋다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도성을 빠져나와 나루에 도착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배에 올랐다. 아버지는 배에탄 또다른 보부상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도착한곳은 광악산 이었다. 남태령을 넘어 늦은밤 수원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도방 마루에 걸터 앉았다. 밥을 먹은후 아버지와 나는 잠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녘에 눈을 떳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후 제값을 받았다. 도방에 남아있는 보부상들은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전라도로 가야해" 혼잣말이 나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오산으로 항하는 보부상들을 따라 길을 나섰다. 한나절을 걷고 나서 아버지의 서찰을 꺼냈다. 모두 한자로 10지가 쓰여있었다. 봇짐을 싸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전라도로 가기위해 처음으로 혼자 길을 나섰다. 마루 한쪽 곰방대를 물고있는 노인에게 양반이 아니길 바라며 다가갔다. 노인에게 한자 두자를 물어봤다. 노인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한자에 한냥씩 내며 단어를 알았다. 앞에자는 오이고 슬프다이다. 위에자는 호이며 부른다라는 뜻이다. 노인은 짐을 챙기며 방으로 들어갔다.
비가많이 왔다. 비가 저녁에 돼서야 비가 그쳤다. 나는 주막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이제 남은 돈은 여덟냥 이다. 꿈에서는 청나라 군사들이 둥둥 떠다녔다. 아침일찍 일어나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 서찰을 열어 그다음 석자를 흙바닥에 썻다. 한나절이 지나서 작은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양반이 쉬고 있는 나무 아래로 갔다. "나리" 내가 부르는소리에 양반은 눈을떳다. 나는 한자 석자를 알고 두냥을 냈다. 양반또한 대가를 말했다. 앞에자는 피이고, 가운데 자는 노, 마지막은 라 자이다. 피 자는 피하다 노 자는 늙다, 리는 피노리 마을을 뜻한다. 나는 안성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남쪽으로 항했다. 저녁이 되어 성환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막에 왔다. 나는 아주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떳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마당으로 나왔다. 한동안 청나라 막사쪽을 지켜보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총소리등의 소리를 들으며 난 또 잠이왔다. 다음날 아침을 먹는동안 간간히 총소리가 들렸다. 일본군사들이 도망친 청나라 군사들을 잡으로 다니는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쩔수없이 성환에서 하루를 더 묵어야했다. 나는 하루종일 주막 근처를 어슬렁 거렸다. 나는 주막으로 들어오는길에 약방앞에. 멈춰섰다. 조심스레 약방의 문을열고 들어갔다. 나는 의원에게 한냥을주고 석자를 알수있었다. 첫자는 경이고, 그뜻은 공경하다 이다. 두번째 자는 천이고 뜻은 하늘이다. 새번째는 매 자이고 판다라는 뜻이다. 나는 의원에게 인사를 하고 나와 공터로 갔다. 이제 두냥이 남았다. 성환에서 해가 지고 있을때 일찍 일어나 나말고 봇짐을 지고 나서는 어른이 있었다. 나는 어떤 어르신과 아산을 같이 갔다. 우리가 아산에 도착한것은 해가 기울기 시작할때 였다. 우리는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주막에 뱃사람이 있었다. 그 어른은 나를 마을 뒤쪽 언덕으로 내려갔다. 그건 바로 교회였다. 어르신은 이곳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말씀하셨다. 나는 교회 짖는 일은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루 한쪽에 누웠다. 인부들 틈에 끼어 기도후 아침밥을 먹었다. 성환 싸움에서 이긴 일본군은 흩어진 청나라 군사들을 잡겠다고 아산을 지나 공주까지 쫓아간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인부들을 따라 교회 짖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때 천주학 어른과 한 서양인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서양인을 신부님이라 불렀다. 신부가 이야기를하면 천주학 어른이 우리말로 전했다 대충 교회짖는 이야기인것 같았다. 천주학,신부가 돌아간뒤 점심밥을 먹었다. 마을에서 한참을 걷다가 기와집 앞에서 멈췄다. 그 안에는 아이가 별해 마주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도련님,도련님" 아이나 어른이나 다르지 않게 한자의 뜻을 알려면 대가가 필요했다. 흙바닥에 나머지 두 자를 썻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슬프구나. 피노리에서 경천이 녹두를 판다 였다. 나는 대가로 노래를 열심히 불려 주었다. 양반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후 언덕으로 갔다. 피노리를 찾는 다는것은 이름 찾는 것 만큼 어려웠다.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피노리를 찾기로 다짐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피노리에 데헤 물었다. 또한 주막 세곳을 다녔다. 하지만 피노리에 데헤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낮에는 일을하고 저녁에는 어김없이 바다로 나가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주막에 들려. 피노리에 데헤 물었다." 내일 하루만 일을 하고 떠나겠어요" 천주학 어른에게 말했다. 피노리를 찾지 못했지만 떠날 생각 이었다. 교회에서의 마지막날 나는 다른 날처럼 목수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양반아이는 김진사 어른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 하여 노래른 부루후 두냥을 받았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었다. 나는 열흘이 넘게 양반 집에서 머물렀다. 나는 양반집에 있는 동안에도 매일 주막에 나갔다. 그러나 아직도 피노리를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수있었다. 대부군 동학 농민군에 관한것이었다. 내게도 선택을 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도성으로 가 노스님을 만나는것을 선택했다. ..길을 나섰다. 가까운 온양을 거쳐야 공주에 갈수 있었다. 감나무. 잎이 제법 떨어지는것을 보니 가을이 가고 있었다. 저녁이 다되어 온양에 도착했다. 마침 온양은 장이 서는날 이었다. 나는 짚신 다섯 컬레를 사고 구경하며 장터 주막에 찾아갔다. 나는 주막에서 한냥을 내밀었다. 주막에는 사람들이 몇몇있었다.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도 온통 동학농민군과 일본군대 이야기 였다. "공주에 가면 녹두 장군을 만날수 있나요? 내가 묻자 사람 들은 웃으며 만나서 무엇을 할거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녹두장군 목에걸린 돈이 욕심이구나 라고 말했다.나는 그말을 선뜻 이해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현상금 천냥이 걸려 있다 말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선뜻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주막에 있던 사람들이 가르쳐 준데로 공주로 가는길을 잡았다. 온양에서 직접 공주로 넘어가지 않고 예산을 거쳐 공주로 가는것 이었다. 다음날 점심때가 조금지나 금강을 만났다. 나는 강을 따라 올라갔다. 길을 알려준 사람우 배를 타고 강을 건널수 있는 곰나루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어, 이대로 배에 타고 .강을 건너기만 하면 늦기전에 동학농민군을 만날수 있을거 같았다 나는 강을 건너야 하는데 할아버지는 관군의 하락 없이는 배를 띄울수없다 했다. 나는 어쩔수 없이 강욱위로 올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가던길을 멈추고 사공 할아버지에게 갔다. 사공 할아버지는 다리가 많이 아팠는데 노래를 불러드렸다. " 아이야 해가 지면 이곳으로 다시 오너라. 강을 건너 주겠다. 사공 할아버지는 대가를 치러야 나의 노래를 오래 기억할수 있을거라고 말씀하셨다. 밤이되자 강바람이 더세게 불었다. 사공 할아버지가 준비한 배에 올라탓다. 배가 강 가운데 쯤 왔을때 바람이 멈추었다. 공주 주막에서 하루를 묵었다. 아침을 막고 주막 아주머니가 걱정스럽다듯 어디를 가냐 물었다. " 녹두장군을 만나러 갑니다.을 " 나는 감사인사를 하고 봇짐을들고 주막을 나와 우금치 고개를 향했다. 근데 총소리와 함성 소리가 시작 되었다. 이 상황이면 녹두장군을 만나기 전에 총에 맏을수있어 가까운 산으로 올라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산에서 기다릴수 없었다. 산을 내려오는동안 시간이 멈춰 버렸다고 생각해 무작정 달렸다. 나는 어제 묵었던 주막으로 발걸을을 돌렸다. 주막에는 손님이 오늘도 나뿐인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마른기침을 했다. 나는 아주머니를 따라 아궁이 앞에 앉았다. 불이 따뜻했다. 아주머니 밥을 하면서 여전히 기침을 했다. 나는 아주머니께 노래를 불러 드렸다. 아주머니는 내노래에 약이 들어가 있다고했다. 방으로 들어와 밥상을 기다리는데 잠시후 한 사내가 방으로 들어와 그는 나를 신기하듯 보았다. 나는 사내의 질문에 녹두 장군을 만나러 간다 말하니 사내는 녹두장군께 대신 전해준다 말했다. 그는 자신이 '김경천' 이라고 했다. 나는 김경천 이라는 말에 몸이 굳어지는건 같았다. 나는 피노리에 데헤 아냐 물었다. 그는 나에게 다시 되물었다 즉 모른다는 뜻이다. 그때 주막 아주머니가 밥상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밤사이 눈이 내려 주막 앞마당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김경천 사내는 벌써 떠난듯 했다. 나는 나흘째 되던날 주막을 나섰다. 나는 주막을 나와 논산으로 항했다. 불화산 근처 작은 마을로 도착했을때 한 노인은 동학농민군은 관군과 일본군에 밀려 다시 남쪽으로 후퇴했다 말했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머물곳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신없이 달리다 내가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후 몸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목탁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작은 방안에서 눈을 떳다. 내 뒤에 쫓아온 사람은 스님 이었고 나는 겁을 먹고 달린것이다. 스님이 내 서찰을 봤다는것에 얼굴을 찌뿌렸다. 며칠이 지났다. 몸은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 나는 살려준 대가로 스님께 열냥을 내밀었다. 스님은 나에게 전주로 가지말라고 하셨다. 동학농민군이 전주를 떠난지 오래됐다고, 노스님은 나에게 피노리를 직접가라고 말씀하셨다. "스님, 저는 피노리가 어딘지 모릅니다. 스님은 내가 피노리를 안다며 순창 백운산 아래 피노리가 있다 말씀하셨다. 스님은 백양사를 들리라고 하셨다. 내장산 백양사는 암자에서 사흘거리 였다. 스님은 나를 쉴곳으로 안내했다. 저녁밥을먹고 주지 스님에게 갔다. 주지스님 옆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나는 주지스님께 노래를 불러주었다. 주지스님은 대가를 치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동학농민군의 총대장 녹두장군을 만나러 피노리에 가는데 가는길이 어디냐 물어봤다. 주지스님은 옆에있는 사내가 녹두장군이라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중요한 서찰을 눈물흘리며 녹두장군께 전했다. 백양사에서 사흘동안 머물렀다. 나는 절에 있는 동안, 매일 주지스님께 노래를 불러드렀다 . 녹두장군은 우리가 만난 다음날 새벽에 떠났다. 나는 나흘째 되는날 아침 주지스님께 인사를 하고 절을 나왔다. 나는 피노리 마을을 들리기로 했다. 주막에 가자 주막 주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이유를 묻자 천하의 녹두장군이 잡혔다. 관군에게 잡힌것도 모자라 일본군에 넘겨졌다. 라고 말을했다. 나는 순창 관아를 항해 달렸다. 나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서자 녹두장군은 일본 군사들 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옷은 붉은피로 흠뻑 젖어 있고 거의 눕다듯이 앉아있었다. 나는 울먹이며 큰소리로 "여긴 왜 오셨어요 말하자 모두 나를 보며, 녹두장군은 눈을 떴다. 나는 녹두장군에게 노래를 불렀다.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며 관아를 빠져 나오는 김경천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열 세살 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암자 바위 위쪽을 돌다 웅덩이를 보자 그의 얼굴이 좋아졌다. 녹두장군은 그 이듬해 도성에서 장군의 동지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내가 장터를 옮길때 마다 녹두장군의 노래가 들리지 않은곳은 없다.
감상:이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먼길을 떠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중요한 서찰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전했다는것이 정말 대단하고 이것이 서찰을 전하는 아이가 이 서찰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지 알수있다. 이 책 중간중간 아이가 아버지를 떠올리는데 정말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잃은것이 정말 속상할것이다. 또한 이 아이가 서찰을 전하기 위해 주막에서 머물때마다 동학농민군, 일본군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 상황에서의 현실을 어린나이에 혼자 감당한다는건이 정말 대단하고 대견하다 이 아기가 처음에는 자신의 얼굴이 볼품없고 못생겼다 하지만 13살이 된 아이는 자신의 얼굴이 좋아졌다 하는것은 아마 자신이 서찰을 끝가지 전한것이 기쁘다는것을 나타낸것갈고 아이가 노래를 부를때 마다 사람들은 약이 들어있다 라고 말했는데 이 아이의 노래는 마음이 안정 되는것을 가지고 있어 약이라나타낸것 같고 이 아이가 13살 이후 보부상을 하고 있을지 어떠할지 궁금하다 또한 아이가 전쟁이후의 모습을 봤을때 정말 슬플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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