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3반입니다.
박초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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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박초원 | 등록일 | 25.12.23 | 조회수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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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오랜 일제 강점기를 끝내고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는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우리 민족의 투쟁의 결과이자,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 결과였다. 광복의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고, 감옥에 갇혀 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풀려났다. 또한 해외에 머물던 동포들과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조국으로 돌아왔으며,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과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던 독립운동가들도 귀국하였다. 광복 이후 우리 민족은 자주적인 정부를 수립하고자 노력했지만, 정치적 견해 차이와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하였고,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에는 미군, 북쪽에는 소련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영국·소련의 외무 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열었으며, 이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라고 한다. 그러나 이 회의의 결정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이 나뉘면서 국내에서는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였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에 따라 한반도에 임시 민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지만, 미국과 소련의 입장 차이로 인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결렬되었다.
미소 공동 위원회가 실패하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국제 연합(UN)에 넘겼다. 국제 연합은 남북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 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의했으나, 소련과 북한이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따라 남한에서는 남한만이라도 먼저 정부를 수립하자는 주장과, 단독 선거를 반대하며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의견이 대립하였다. 결국 국제 연합은 선거가 가능한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고,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같은 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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