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고 예의바른 어린이^0^
남색모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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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남색모둠8 | 등록일 | 19.05.22 | 조회수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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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그린 초상화이다. 왕의 초상은 조상 추모의 의미뿐 아니라 왕실의 영구한 존속을 도모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특히 태조는 나라를 연 개국시조로서 더욱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일국의 시조인 만큼 특별한 예우를 받아서 국초부터 따로 태조진전(太祖眞殿)을 설치하고 어진을 봉안했다. 서울의 문소전(文昭殿), 외방의 출생지인 영흥의 준원전(濬源殿),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개성의 목청전(穆淸殿),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본관인 전주 경기전 등이 그것이다. 조선 태조어진은 익선관과 곤룡포를 착용한 채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태조 어진은 신장이 크고 당당한 모습으로 위풍당당한 군주의 위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식은 명나라 태조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 어진은 이모본으로서 조선 초기의 초상화법을 충실하게 따르는 동시에 제작 당시의 화풍도 반영되어 있다. 안면 처리에서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목한 부위에 살포시 음영이 깔려 있는 점 등은 이모 당시의 화법을 보여 준다. 옷주름 처리는 곧은 직선으로 조선 초기 양식을 보이지만 선염(渲染) 효과가 선 둘레에 조심스럽게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태조어진은 전체적으로 볼 때 원본에의 충실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어진은 국왕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하여 정면관이 제일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면관은 그려내기가 가장 어렵다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참조해 보면, 이 어진은 정면관을 훌륭히 소화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補) 및 견룡(肩龍)의 이금(泥金) 효과에 의하여 엄정한 품위를 잘 표현하였다. 태조 어진은 조선 왕실문화의 격조를 잘 보여주는 초상화이다. 신숙주가 찬술한 『영모록(永慕錄)』을 보면 당시 선원전(璿源殿)이라는 경복궁 내의 열성어진(列聖御眞) 봉안처에서 받들던 태조어진이 무려 26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태조어진은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 1본뿐이다. 이 어진도 1872년 당시 경기전에서 받들던 어진이 오래되어 낡고 해짐에 따라 영희전(永禧殿)에서 받들던 태조어진을 범본으로 하여 화사 박기준(朴基駿), 조중묵(趙重默), 백은배(白殷培) 등이 모사한 이모본이다. 태조 어진의 이모와 관련된 전 과정이 『어진이모도감의궤(御眞移模都監儀軌)』에 수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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