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용계리 청자요지는 1983년 아산댐 수몰지역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발굴되었다. 이 청자요지는 40×80m의 규모로 4m 깊이로 형성되어,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네 개의 거대한 퇴적 구릉과 주변의 작업장, 건물 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에서 제작된 청자는 어두운 유색, 연판문(蓮瓣文)과 앵무문(鸚鵡文) 등 단순한 무늬 등을 통해 초보적인 단계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가마바닥의 경사면은 갑발(匣鉢)을 이용하여 수평을 이루었으며 벽과 천장은 돌과 점토를 섞어 쌓아 올렸다. 이 청자요지의 발굴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가마터 발굴이 진행되면서 시작되었다. 44개의 구릉 중에서 최남단의 퇴적 구릉 1기와 주변 건물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세 개의 가마가 중첩되어 발견되었다. 굽의 폭이 넓고 낮은 햇무리굽 청자완이 출토되었으며, 청자의 문양으로는 음각 기법의 운문(雲文), 연판문(蓮瓣文), 앵무문(鸚鵡文) 등과 양각 기법의 연판문(蓮瓣文)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건물지에서 ‘태평임술이년명(太平壬戌二年銘)’이라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어 이것과 동일계로 판단되는 기와편이 가마 벽에 섞여 있어 용계리 가마의 활동은 10세기 전반에서 11세기 전반까지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청자요지는 퇴적 구릉 사이에서 3기의 가마가 중복되어 발견되었다.가마의 길이는 38m, 31m, 14m이며, 폭은 1.1~1.3m이며 대접, 접시, 탁잔 등 다양한 청자 기종에 운문, 연판문, 앵무문, 초화문이 음각, 또는 양각되거나 민무늬로 제작된 청자들이 출토되었다. 이 청자요지는 전라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요지로, 청자 가마의 구조, 관리사, 또는 작업장 등으로 보이는 건물지, 토기 요지와 함께 최대의 퇴적층을 간직한 곳으로 고려 시대 도자사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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