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1반

안녕하세요. 여러분! 항상 건강하고 밝은 우리반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협력하고 배려하는 활기찬 4학년
  • 선생님 : 이창근
  • 학생수 : 남 0명 / 여 0명

경기전

이름 은주성 등록일 18.04.21 조회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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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이성계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한 곳이며, 영정을 실제로 모신 정전 건물은 보물 제1578호다.

태종 10년인 1410년에 전주,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는데, 세종 24년인 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숭전(永崇殿)'[1]으로 이름을 고쳤다.[2]

'경기(慶基)'라는 이름은 조선의 국성(國姓)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이므로 '경사스러움(慶)이 터잡은(基)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경기전을 제외한 4곳은 모두 소실되고 정유재란 때 이 경기전마저 소실되었다. 그 후 광해군때 경기전만 복원했다. 태조 어진은 임진왜란 당시 묘향산,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 정유재란 때는 서울 명륜당 그리고 동학농민운동 때는 위봉산성으로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경기전에 있는 어진은 1872년에 원본이 너무 오래되어 모사한 것이다.

경기전의 입구에 있는 하마비(下馬碑)에는 이곳이 어떤 장소였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참고로 경기전 코 앞에는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성당이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다. 완고한 왕조의 갖은 탄압을 뚫고 전세계 거의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신앙을 싹틔운 한국 가톨릭의 오래된 교회와, 바로 그 유교 이념으로 5백년을 버틴 왕조의 시조를 모신 준 묘사(廟祠)가 얼굴을 바로 맞대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다.[3] 실제로 처음 방문해 보면 이 고즈넉한 마을에 우뚝선 두 건물들의 이질감이 매우 인상적이다. 최근의 노점들은 마음 속에서 지우고 보도록 하자(...)

다소 충격적이기까지한 이 절묘함은 두 건물 사이를 지나는 태조로가 조선시대까지는 전주부의 남쪽 성벽 자리였던 것에서 기인한다. 천주교 선교가 자유화[4]되어, 전주지역 신자들이 점차 산골에서 내려오고 수도 늘면서 전주부 내에 성당을 짓기 위해 성벽에 붙어있는 구례 영저리[5] 저택을 사들여 임시 성당 겸 성당 신축 부지로 삼았다. 그런데 착공 직전인 1908년 통감부가 전주부성을 헐어버리면서 성당 부지와 경기전이 장애물 없이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태조 어진봉안 관련건물 이외에 전주사고, 어진박물관이 위치한다.

2. 훼손과 복원[편집]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소학교[6][7]를 지으면서 원래 있던 건물을 상당히 헐어냈는데, 이때 훼손된 부분은 주로 옛 전주부성 동문 근처인 서쪽과 북쪽 부분이며 2004년에 복원 완료 되었다. 인터넷상에서 경기전의 원래 영역으로 지적받는 바로 옆의 중앙초등학교 부지는 조선시대에는 전주부성의 밖이었으며, 원래부터 경기전과는 전혀 무관한 장소였다.[8] 한때 전주시립박물관도 경내에 있었으나 국립전주박물관이 생기면서 없어졌다.

3. 관람[편집]

입장료는 무료였으나, 2012년 9월에 유료화 정책이 발표되어 2016년 2월 현재는 어른이 3,000원, 청소년이 2,000원, 어린이가 1,000원이다. 그리고 경기전에는 정문과 동문이 있다. 경기전과 중앙초등학교 사이길로 가면 어진박물관과 가까운 동문이 있는데, 사람들이 한옥마을에 면한 정문에만 줄을 길게 서서 이 쪽은 한적한 편이다.

2012년부터 경기전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경기전 정문에 수문장 배치, 교대식[9] 및 경기전 부속건물에 여러 체험[10] 이벤트가 시행되고 있는데 관광객이 몰리는 방학 시즌에는 휴무인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가격도 저렴한 편. 1,000원 내지 2,000원 급격히 오른 입장료보다 더 싸다는 게 신기할 노릇

경기전 정문에 서 있는 수문장은 경복궁 및 여러 고궁에서와 마찬가지로 기간제 알바일지언정, 나름 훈련받은 전문 인력이다. 인형, 마네킹이 아니다. 괴롭히지 말자

KBS 1TV숨터에서도 파노라마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4. 기타[편집]


KBS사극 용의눈물 에서 개성 수창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전동성당과 더불어 전주한옥마을의 핵심 랜드마크가 되었다.

[1] 이후 다시 '숭령전(崇靈殿)'으로 고쳤다.[2] 위키백과 해당 문서에서 인용.[3] 서울 외에는 한반도 유일한 곳이며, 서울 사직단과 종묘 코 앞에 성당이 들어설 가능성도 낮으므로[4] 1886년 한불수교를 계기로, 이때부터 한국에서도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다.[5] 관찰사와의 연락을 위해 파견된 지방 아전[6] 이전 버전의 문서에 전주초등학교라고 나왔으나, 전주 중앙초등학교가 맞다. 경기전 경내에 준공한 어진박물관에서 소개하는 경기전 연혁에 경기전 경내 서쪽에 위치한 중앙초등학교를 이전했다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전주 중앙초등학교 연혁에 1946년에 개교하고 1997년에 이전했다는 말이 나오는 반면, 전주초등학교는 1897년에 개교했다고 나올 뿐 이전했다는 말이 없다. 전주 중앙초등학교는 일본인 학교를 해방된 뒤 폐교했다가 다시 개교한 것이다. [7] 어진박물관 홈페이지경기전 탭 → 경기전 소개 게시판 → 경기전의 건축 구조 게시글 참고 [8] 해설사 말에 따르면 중앙초등학교가 경기전에 있었으나 복원때 옮겼다고함. [9] 살아있는 왕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므로 서울의 궁궐 등에서 치러지는 것에 비하면 조촐하게 치러진다.[10] 왕실 의상, 수문장 체험, 제례 체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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