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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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은주성 | 등록일 | 18.04.21 | 조회수 | 10 |
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한 곳이며, 영정을 실제로 모신 정전 건물은 보물 제1578호다. 임진왜란 당시 이 경기전을 제외한 4곳은 모두 소실되고 정유재란 때 이 경기전마저 소실되었다. 그 후 광해군때 경기전만 복원했다. 태조 어진은 임진왜란 당시 묘향산,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 정유재란 때는 서울 명륜당 그리고 동학농민운동 때는 위봉산성으로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2. 훼손과 복원[편집]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소학교[6][7]를 지으면서 원래 있던 건물을 상당히 헐어냈는데, 이때 훼손된 부분은 주로 옛 전주부성 동문 근처인 서쪽과 북쪽 부분이며 2004년에 복원 완료 되었다. 인터넷상에서 경기전의 원래 영역으로 지적받는 바로 옆의 중앙초등학교 부지는 조선시대에는 전주부성의 밖이었으며, 원래부터 경기전과는 전혀 무관한 장소였다.[8] 한때 전주시립박물관도 경내에 있었으나 국립전주박물관이 생기면서 없어졌다. 3. 관람[편집]입장료는 무료였으나, 2012년 9월에 유료화 정책이 발표되어 2016년 2월 현재는 어른이 3,000원, 청소년이 2,000원, 어린이가 1,000원이다. 그리고 경기전에는 정문과 동문이 있다. 경기전과 중앙초등학교 사이길로 가면 어진박물관과 가까운 동문이 있는데, 사람들이 한옥마을에 면한 정문에만 줄을 길게 서서 이 쪽은 한적한 편이다. 4. 기타[편집][1] 이후 다시 '숭령전(崇靈殿)'으로 고쳤다.[2] 위키백과 해당 문서에서 인용.[3] 서울 외에는 한반도 유일한 곳이며, 서울 사직단과 종묘 코 앞에 성당이 들어설 가능성도 낮으므로[4] 1886년 한불수교를 계기로, 이때부터 한국에서도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다.[5] 관찰사와의 연락을 위해 파견된 지방 아전[6] 이전 버전의 문서에 전주초등학교라고 나왔으나, 전주 중앙초등학교가 맞다. 경기전 경내에 준공한 어진박물관에서 소개하는 경기전 연혁에 경기전 경내 서쪽에 위치한 중앙초등학교를 이전했다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전주 중앙초등학교 연혁에 1946년에 개교하고 1997년에 이전했다는 말이 나오는 반면, 전주초등학교는 1897년에 개교했다고 나올 뿐 이전했다는 말이 없다. 전주 중앙초등학교는 일본인 학교를 해방된 뒤 폐교했다가 다시 개교한 것이다. [7] 어진박물관 홈페이지 → 경기전 탭 → 경기전 소개 게시판 → 경기전의 건축 구조 게시글 참고 [8] 해설사 말에 따르면 중앙초등학교가 경기전에 있었으나 복원때 옮겼다고함. [9] 살아있는 왕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므로 서울의 궁궐 등에서 치러지는 것에 비하면 조촐하게 치러진다.[10] 왕실 의상, 수문장 체험, 제례 체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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