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꽃이야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이름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이름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이름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이름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이름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전주 역사적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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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송은율 | 등록일 | 20.06.16 | 조회수 | 196 |
<이성계> 이성계는 함경도 영흥에서 출생하였으며 함경도 함흥에서 성장하였다. 본관은 전주이다 성(姓)은 이(李), 휘는 단(旦), 초명은 성계(成桂), 초자는 중결(仲潔), 자는 군진(君晉), 호는 송헌(松軒)·송헌거사(松軒居士)이다. 138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의 실권을 맡은 적이 있는 이성계는 고려에서의 관직이 문하시중 직위에 이르렀고, 고려 우왕 때,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서 요동 정벌을 위하여 북진을 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문하시중으로서 정권을 장악하고 고려 공양왕으로부터 보위 선양의 형식으로 개경(지금의 개성특급시) 수창궁에서 즉위함으로써 조선을 개국하였다. 원래 이름은 성계였으나 조선을 개국한 후에 '단'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군주 보위에 오른 이후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였으며,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조선의 기틀을 다졌다 유년기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태어날 때 부터 총명하고 우뚝한 콧마루와 임금다운 얼굴로서, 신체는 영특하고 준수하며, 지략과 용맹은 월등하게 뛰어났다고 한다.
어린 시절 고향인 함경도 영흥과 함주에서 살았다. 북방 민족들이 매를 구하러 주로 내려왔는데, 흔히 말하길 "이성계와 같이 걸출한 매를 얻고 싶다"라고 하였다.
고려의 무신 가문 출신인 이성계는 어릴 때부터 영웅의 기질을 타고나서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며, 용맹하여 수많은 전쟁터에서 전공을 세웠다. 특히 활을 잘 쏘아서 '신궁(神弓)'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천하의 명궁으로 알려졌다. 훗날 그의 눈부신 활약상에 관해서는 여러 영웅담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으며, 이성계는 30 여년 동안 전장에 나아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성계의 군대가 전장에 나아갈 때는 대라(大螺)를 부는 특유의 의식이 있었는데, 적들이 멀리서 그 소리만 듣고도 바로 이성계가 왔다는걸 알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 금재 최병심> 금재 최병심 선생은 전북 전주 사람으로 1905년, 민족의식을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해 전주에 옥류정사를 개설하고 ‘염수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였습니다. 염수당은 학문을 탐구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항일 투쟁 유생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단식으로 일제에 항거하고 토역선참의 격문을 작성하여 곳곳에 붙였습니다. 1912년에는 호남창의대장 이석용이 독립밀맹단을 조직하고 각 지역을 분담할 때 전주 지방을 맡아 의병활동을 지원하였습니다. 옥류정사가 항일사상의 중심지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함을 간파한 일제가 옥류정사 일대를 누에치기시험장으로 조성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이곳을 강탈하려 하였고, 이에 선생은 단식으로 저항하였습니다. 이에 일제가 집 일대에 방화를 저지르며 선생을 위협했지만, 선생은 '불에 타 죽겠다'고 버티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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