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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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가은 | 등록일 | 20.05.19 | 조회수 | 8 |
지방 호족의 등장 중앙 귀족들 사이에 왕위를 둘러싼 권력이 치열해지면서, 신라 사회의 유지해 오던 골품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진골 세력에 밀려 관직 승진에 제한을 받았던 6두품 세력은 당에 유학하거나 학문 활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들은 골품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등 개혁을 요구하였다 그중 최치원은 진성 여왕에게 개혁안을 올려 정치 개혁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앙의 정치가 혼란한 가운데, 지방에서는 진골 중심의 중앙 정치에 도전하는 새로운 지방 세력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들은 성을 쌓아 근거지를 구축하고,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 이라 부르면서 독자적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이들을 호족이라고 한다. 토착 세력이 호족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지만, 중앙에서 밀려난 귀족이 지방에 내려가 호족이 되기도 하고, 군사력을 갖고 있는 군대 지휘관, 대이 교역을 통해 성장한 해상 세력이 호족이 되기도 하였다. 호족은 6두품 세력과 선종 세력이 성장하자 이들과 결합하여 자신들의 통치 기반을 확대하고, 신라 정부에 대항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준비해 나갔다. 고려의 건국 신라가 후삼국으로 분열된 후, 후백제는 전라도와 충청도 등 옛 백제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후고구려(태봉)는 지금의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강원도 일부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송악(개성)의 호족인 왕건은 궁예 세력이 미치자 그의 신하가 되었고, 왕건은 후백제의 금성(나주)을 점령하는 등 크게 활약하여, 최고 관직인 시중(수상)의 자리에 올랐다. 한편, 궁예는 자신을 미륵블이라고 하면서 강압적인 정치를 펴 민심을 잃었다. 결국, 신하들은 궁예를 내?고 왕건을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왕위에 오른 왕건은 고구려를 이었다는 뜻으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918), 이듬햐에 ㅊㄹ원에서 송악으로 수도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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