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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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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질서가 무너지고 있네요.
작성자 전주기전여자고 등록일 20.03.12 조회수 165

장인균 <전주기전여고 교장·호남기독학원 상무이사>

 

 

우리 나이 세대들에게는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들었던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추위에 언 발을 동동 구르거나, 뙤약볕 아래서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시간이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러나 단상 위의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추위에 떨고 있는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얄밉게도 계속돼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 ‘끝으로 부탁하는 말’이 네다섯 번이 지나야 겨우 끝나곤 했었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누구나 당연하게 여겼던 풍경이었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꼰대스러움’이 넘쳐나는, 잊고 싶은 기억일지 모르겠으나 희한하게도 그때 그 기억이 아주 쓸데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참으로 지루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들이-“성실해야 하며, 인내하고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며 건강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효도해야 한다.”- 신기하게도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 때때로 생각나며, 그 말이 과히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소중한 존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모두 정직해야 하며,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도 꼭 필요하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특히 성직자나 교사, 법관 등은 이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가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신뢰와 정직을 상징하는 최후의 보루’라고까지 말한다. 이들을 이렇게 거창하게 칭찬하는 이유는 이들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성직자는 어떤 성직자가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단식 농성을 했다. 당사자는 용퇴하겠다고 했다가, 개혁 후 물러나겠다고 자기 말을 주워 담는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개혁해도 될 텐데 말이다.

 

 


구성원들의 사랑과 헌신으로 세워진 모 교회에서 세습을 반대하는 쪽과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쪽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싸우고 있다. 엊그제 총회 재판국 판결은 신앙인들의 이중성을 증명하는 듯하다.

 

 


학교에서는 내신 성적 조작과, 선생님들의 성추행이 뒤늦게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은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감을 주고 있다. 가장 정의롭고, 가장 공평해야할 사법부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뒷거래했다니. 진심으로 ‘가짜 뉴스’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판사가 오직 자신의 양심에 근거한 판단을 하고 있는가? 권력과 재력에 굴하지 않고 정의로움으로 약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가? 우리가 지금 접하는 사법부의 더 큰 문제는 구성원 중의 일부의 문제가 아니고, 재판거래가 사법부의 최고 기관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데 있지 않나 싶다.
 
 

 


어떤 재벌 회사의 갑질 논란은 국민들의 관심사이고 지탄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국민들은 ‘화가 나지만 많은 재벌 가운데 하나이고, 그렇지 않은 재벌이 더 많겠지’라며 넘어간다. 국민은 정치인의 거짓말이나 이권 개입 뉴스를 보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집단이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대부분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소수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직 폭력배의 집단 싸움, 또는 반인륜적인 범죄 뉴스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래서야 하겠는가!’라는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렇지만 그때도 우리 사회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듯한 공포감이 엄습해 오지는 않았다. 날실 하나, 씨실 하나 끊어지는 것이야 흔한 일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성직자가 성스럽지 못하고, 교육자가 존경받지 못하고, 판사는 판결을 의심받고 있다. 성직자, 교육자, 법관 같은 집단에서 지켜야 할 높은 도덕적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이미 이들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날실과 씨실을 묶어주는 벼리가 뜯어진다. 공포감이 밀려온다.

 


 
학창 시절 들은 교장 선생님 훈화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운동장 조회대 아래 학급별로 줄 서서 빨리 끝나기만을 고대하며 들었던 기억만은 확실하다. 내가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내용이 어쩌면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성실해야 하며, 인내하고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며 건강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효도해야 한다.” 기억은 왜곡이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신뢰와 정직 그리고 인간다움으로 바르게 살아야 함은 자명한 사실 아닌가? 

 

http://www.jeonbuktimes.co.kr/news/view.asp?idx=4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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