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유연화 1824 최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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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 | 등록일 | 22.12.19 | 조회수 | 70 |
「굳세어라 금순아」
6·25전쟁 휴전을 전후한 전쟁과 분단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정서를 담아 부른 노래로 이 정서 덕분에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와 통일이 되면 만나자는 내용으로, 흥남부두 외에도 1.4후퇴, 국제시장, 영도다리 등 6.25 당대를 상징하는 가사가 나오며, 이후 영화나 드라마 등에 제목이 자주 패러디 되었다
이 노래는 흥남 철수 정경과 전쟁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는데, 흥남 철수는 6·25전쟁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사건중 하나였다. 노랫말을 보면 당시대를 상징하는 '흥남부두', '1·4 후퇴', '국제시장', '영도다리' 등과 같은 단어가 들어 있다. 가사를 보면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연인이 생이별을 하고 피난지에서 장사로 생활을 꾸려가며 살고 있는데,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있다. <굳세어라 금순아> 3절 가사에는 ‘북진통일’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러나 미도파 음반에서 1960년경 발매한 현인의리바이벌 음반에서는 이 부분을 ‘남북통일’로 개사하였다. 호전적인 가사가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었다. 1953년 노래를 처음 발표한 당시에는 삼팔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것뿐, 3년간의 전쟁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뤘다는 여론이 팽배했기에 ‘북진통일’이란 가사는 냉전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오리엔트레코드사의 설립자인 이병주는 “이 노래의 작사가 강해인, 즉 강사랑이 여순 사건에 연루되어 한동안 공개적인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재기한 첫 작품이 <굳세어라 금순아>였다”고 회고했다. 대구 송죽극장 맞은편 건물에 이병주가 운영하던 오리엔트레코드사가 있었다. 어느 날 점심 때 강사랑은 오리엔트 식구들과 냉면을 먹으러 가던중 초라하고 지친 행색의 피난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 곡을 착상했다고 한다. 대구의 양키시장과 부산의 국제시장은피난민들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공간이었고, 이를 보며 자신이 겪었던 피난과 1.4후퇴의 경험과 감정이 밀어닥쳤다. 강사랑의 노랫말을 본 박시춘은 곧바로 작곡에 들어갔다. 그는 오리엔트레코드사 2층의 다방에서 군용담요를 창문에 겹겹이가리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곡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노래가 「굳세어라 금순아」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다른 대중문화 분야에도 영향을 끼쳐, 악극 「굳세어라 금순아」가 1953년 11월에 , 영화 「굳세어라금순아」가 1962년 10월에 개봉되기 하였다.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이 2002년에 간행되기도 했고, 노래의 내용과는 아무 관계없지만 제목을 딴 영화 「굳세어라 금순아」가 2002년에,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가2005년에 방송되기도 했다. 부산은 가수 현인의 고향이며 「굳세어라 금순아」의 공간적 배경이다. 부산광역시에서는 노래와 가수를 함께 기념하는 의미에서 영도다리 옆에 현인 동상과 노래비를 2003년 건립하였다. 송도해수욕장에도 현인 동상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2007년 세워져는데 비문 내용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는 같은 곡의 노래비가 두 개나 세워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향민의 아픔과 기원을 토로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노랫가락만큼은 경쾌하고 구성지다. 전쟁의 참상에 대한 절묘한 묘사는 '국민가요'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1982년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민중가요로 소설가 황석영이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의 옥중지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 씨가 작곡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윤상원 씨와 1978년 광주의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1982년)을 소재로 5·18 민주화운동을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표준어 규정에 따라 통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른다.
소설가 황석영이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의 옥중지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당시 전남대 재학생이던김종률 씨가 작곡했다. ‘묏비나리’는 1979년 YWCA위장결혼식 사건의 주모자로 수감된 백기완 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쓴 15장의 장편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제창돼 왔다. 그러나 2009년 이명박 정권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식순에서 제외시키고 식전 행사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에 반발한 광주 5·18 유가족회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광주 금남로에서 별도의 5·18 기념식을열었다. 이후 야당 및 5·18단체는 본 행사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반영해 제창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에2011년부터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본 행사에 포함됐으나,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하는방식으로 변경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그러다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만인 5월 12일 ‘업무 2호 지시’로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그리고 2017년 5·18 기념식에서는 2008년 이후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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