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근영여자고등학교 로고이미지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자유를 갈망하는 홍콩의 5대 요구
작성자 김유민 등록일 22.04.16 조회수 166
첨부파일

홍콩의 현재를 위해, 미래를 위해 


  세상에는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게 일어나는 시위, 다른 나라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시위, 세계적으로 이슈와 문제가 되는 시위 등이 지구촌 사회의 흐름을 보여주는 와중에도 19년부터 이어지는 홍콩의 시위는 유다르다. 홍콩의 7분의 1정도의 인원이 손가락 5개를 펼치고 홍콩 정부에게 5대 요구를 구하는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대한 시위의 시작은 경제적 문제, 중국을 향한 반감과 더불어 범죄인 인도법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년에 홍콩에서 제출된 범죄인 인도법안, 즉 송환법은 반중국 사람들의 발을 잡아놓고 처벌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으므로 홍콩 시민들에게 큰 우려와 반발을 얻었다. 3월에 시작되었던 송환법 반대 시위는 6월이 되자 약 200만명의 시민이 참가하는 엄청난 규모로 발전하였다. 국제 사회에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시위는 결국 송환법을 철폐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송환법 반대 시위는 점차 홍콩의 5대 요구 시위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콩의 5대 요구는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 폭행 독립조사위원회 성립, 체포된 시위자 석방과 면제, 시위 폭동 규정 철회, 행정장관 입법회 총선거 실시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시위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홍콩 경찰의 도를 넘는 강경대응은 16년도 홍콩 우산시위와 비교적으로 5대 요구 시위가 폭력적인 성향을 띠게 만들었다. 경찰은 최루탄, 경찰봉, 실탄 등을 동원해 막무가내로 시민들에게 강도 높은 폭력을 행사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은 많은 아픔을 남겼던 우리나라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으로부터 반환된 홍콩은 2047년까지 중국과 독립된 한 나라로서 일국양제를 입증하고 있는 나라이다. 종교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여러 색깔의 동서양 문화를 함께 접할 수 있는 홍콩은 중국에게 꾸준히 융합정신을 요구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진핑은 홍콩의 시위를 그저 도전으로만 치부한 뒤 국가를 위협하는 행위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무력과 보통선거제로 불거지는 자유보장이 홍콩의 5대 요구가 구성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또한 홍콩 시위를 향한 몇몇 주변국의 속내는 여러 유명한 기업들을 통해 드러났다. 애플은 현지법을 위반한다며 홍콩 시민들이 경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홍콩맵라이브'라는 앱을 1일만에 삭제하였고, 구글은 홍콩 시위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혁명'게임을 삭제하였다. 디즈니는 중국의 인권 탄압이 심한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영화 뮬란의 촬영을 진행하였으며 엔딩 크레딧에는 중국 신장 지구 정부보안국에 고맙다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홍콩 경찰을 지지하는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말을 내놓지 않는 행보에 보이콧 운동이 일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세에서 대체할 수 없는 거대한 중국 시장의 영향력이 아쉽거나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홍콩 시위를 방조하는 기업들을 향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홍콩의 시위는 실패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홍콩의 시위가 그만큼 중요했던 이유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의 공산주의에 대적할 수 있는 현재의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의 시민들은 환한 미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중국도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소금으로 만든 배를 바다 위에 띄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과, 홍콩의 5대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 나라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김유민기자

 

홍콩 시위 사진 






























이전글 포스트트루스, 탈진실의 교묘한 이간질
다음글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 도착한 위드 코로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