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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 김래원 한국사 유연화
작성자 *** 등록일 22.12.25 조회수 107

1.4후퇴 홍남철수

 

1950년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 동안 동부전선에 투입되어 압록강 유역의 혜산진과 두만강 유역까지 진출했던 미군 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배편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한국군과 유엔군이 38선 이남 지역으로 다시 물러난 이른바 '1.4후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진다. 당시 퇴각하는 한국군과 미군을 따라서 북한 지역에 살던 주민들도 대거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면서 수 많은 난민과 이산가족이 발생했는데, 흥남에서 배를타고 내려온 피난민만 해도 10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 패퇴를 거듭하던 한국군과 미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선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북한군의 배후를 차단한 뒤 낙동강 방어선을 넘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 결과 9월 28일 서울을 탈환했으며, 38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해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미 제10군단은 동부전선을 맡았고, 추가로 배속 받은 한국군 제 1군단으로 하여금 동해안을 따라 북진하도록 하고, 미 제1해병사단과 제7보병사단으로 하여금 인천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 원산상륙작전을 추진하게 했다. 하지만 한국군 제1군단이 10월10일에 원산을 점령 하면서 원상상륙작전은 무의미한 작전 이였고, 10월29일이 되어서야 원산에 상륙한 미군은 압록강 유역인 혜산진과 두만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미 제1해명사단은 북한의 암시수도인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개마고원의 장진호 방면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북한의 지원 요청을 받은 중국공산당 정부가 병력을 보내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전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1950년 10년 19일 26만 명의 병력을 1차로 압록강 너머로 파병한 중국은 10월 25일 중국인민군을 창설해 북한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했으며, 그날부터 전투에 참전했다. 중국군이 개입하면서 혜산진과 두만강 방면으로 나아갔던 미군과 한국군은 병력의 열세와 강추위를 극복 하지 못해 12월 이후 후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나섰던 미 제1해병사단도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군의 대규모 병력에 포위되어 전멸될 위기에 빠졌다. 결국 전세가 불리해지자 유엔군 사령부는 1950년 12월 8일 동부전선에서 북진에 나섰던 미 제1군단과 한국군 제 1군단의 병력에 대해 철수 명령울 내렸다. 미 제1군은 휘하의 모든 부대에 철수해서 흥남을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약 10만명에 이르는 미군과 한국군이 흥남에 집결했으며, 그곳에서 12월 15일에서 12얼 24일까지 열흘에 걸쳐 193척의 선박을 타고 38선 이남 지역으로 철수했다. 한편, 당시 철수하는 미군과 한국군을 따라 10만여 명에 아르는 피난민도 38선 이남 지역으로 내려왔다 당시 미 제1군단의 고문으로 활동하던 현봉학의 요청으로 수많은 피난민이 군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특히 군수 물자를 운송힉; 위해 투입되었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는 화물을 버리고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까지 그들을 이송해주었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한때 가장 많은 난민을 태우고 향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 일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거제시의 거제포로수용수 유적공원에는 흥남청수작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 

현인 님이 만 34세이던 1953년에 발표된 곡입니다. 이 노래는 현인 님을 1950년대 대표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배경으로 하는 노래이고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며, 어디에 있든지 간에 굳세게 살아가길 바라며, 남북통일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하는 내용입니다. 노래 가락은 경쾌하지만 그 내용은 실향민의 아픔을 애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래는 전쟁 직후의 시대상과 부합하면서 "국민가요"로 불릴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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