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현대사와 함께 해 온 신흥 120년의 역사
+ 본교는 1900년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인문계 남자고등학교입니다.
신흥학교 시대
1900년 9월 9일 전주 서문 밖 다가산(多佳山) 정상에 있는 레이놀즈(W.D.Reynolds) 선교사 사택의 사랑방에서 김창국(金昶國) 소년 1명으로 신학문당(新學問堂)을 열어 호남 최초의 근대교육을 시작하다.
1904년 화산리 서원고개에 있는 해리슨(W.B.Harrison)선교사 사택으로 학당을 이전하여, 해리슨 선교사와 그 부인, 최중진, 김필수, 김명식 등 5명이 10명의 학생을 가르치다.
1906년 봄에 희현당 부지와 건물을 인수하여 학당을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55명을 가르치다. 교수과목은 국문, 산술, 한문, 성경, 역사, 습자, 체조, 창가, 도화이다.
1908년 니스벳(J.S.Nisbet) 선교사가 학교 명칭을 예수학교에서 첫새벽[new dawn]을 뜻하는 신흥학교라고 개칭하고, 현 대강당 자리에 기와집 8칸을 신축하다.
1909년 신흥학교 보통과 1회 졸업생 5명을 배출하고 양옥 2층 80평을 신축하며, 고등과 학생도 모집하기 시작하여 보통과와 고등과 학생 숫자는 모두 150명이 되다.
1912년 고등과 1회 졸업생 4명을 배출하다.
1919년 3.13전주만세운동을 주도하다.
1928년 옛 본관인 리차드슨홀을 신축하다.
1930년 1월 25일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며 일제에 항거하는 전주학생시위를 주도하다.
1933년 지정학교로 인가를 받다
1936년 대강당인 스미스홀을 신축하다.
1937년 9월 22일 일제의 강압적인 신사참배를 정면 거부하고 학교를 자진 폐교하다.
 
1946년 해방 후 미군정청 초급중학교 인가를 받아 신흥학교 문을 다시 열고 신입생을 선발하여 1949년 신흥초급중학교 1회 졸업생 125명을 배출하다.
1950년 신흥고등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중학교 3년제, 고등학교 3년제로 분리했으나,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학생들이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다.
1952년 신흥고등학교 1회 졸업생 44명을 배출하다.
1962년 인톤기념관을 낙성하고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을 설립하고 고등학교 24학급으로 인가받다.
1966년 전흥(全興)국민학교를 인수하여 신흥국민학교를 개설하고, 1969년 신흥유치원을 설립하다.
1975년 신흥국민학교 문을 닫다.
1980년 5월 5.27신흥민주화운동을 통해 전두환 신군부의 독재와 광주학살 만행에 저항하는 시위를 전개하다.
1982년 옛 본관인 리차드슨홀이 화재로 소실되다.
1983년 고등학교 신관 3층 연 1,010평을 준공하다.
1989년 총 30학급으로 증설되고 1990년 신관을 4층으로 증축하다.
1994년 도서관 희현당을 준공하다.
1999년 특별교실 정보관 165평을 준공하다.
2000년 9월 9일 신흥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하다.
2001년 개교100주년기념관을 준공하다.
2005년 인톤 다목적관 465평을 준공하다.
2011년 창조관 648평과 식당 254평을 준공하다.
2022년 9월 신흥고등학교 제16대 김병호 교장 취임하다.
2023년 현재 123년간 신흥학교 졸업생 5만여 명을 배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