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일본 후생노동성의 2014년 취업형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파트타임과 파견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은 40.5%에 달했다. 프리터, 주부 파트타이머로 대표되는 일본의 비정규직 문제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비정규직 비중이 40%를 넘어선 것은 1987년 조사 시작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일본의 비정규직이 이처럼 급증한 데는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후 지속되는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노동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한 데 따른 결과다. 일본은 1987년 파견법을 제정한 데 이어 2003년 항만, 건설, 경비, 의료 업무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모든 업무에 대해 근로자 파견을 허용했다. 전문 26개 업종에 대해서는 파견기간 제한도 없앴다. 기간제 고용의 경우 무기계약 전환 의무가 사실상 의미가 없을 정도로 기업들이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일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한국에 비해 나은 편이긴 하지만 일본 내에서 비정규직의 급증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중산층 의식이 견고한 일본의 전통적인 사회질서가 급속히 해체되고 대신 ‘룰 없는 고용’이라 일컬어지는 고용파괴와 빈곤, 양극화의 폐해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비정규직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고용유연성이 과도하게 진행돼온 한국 입장에서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은 아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한국 비정규직 비중은 2014년 44.7%로 일본보다 크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중은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에 정반대의 접근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비정규직 남용 폐해가 부각되자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입법을 하고 재계에 직접고용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시오자키 야스히사 후생노동상은 지난달 28일에도 일본 경제단체연합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 개선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이를 ‘노동개혁’으로 호도하고 있다. 특히 노동자 입장에서 재계를 압박해야 할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연내 노동개혁이 입법화 안되면 기업들이 혼란을 겪을 것”이라며 거꾸로 노동계의 양보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은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한 일본으로부터 배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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