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年5月11日 전북 고창군에서 정종택(父), 거창신씨(母)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호남 유림 기우만과 최익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6년 스승 최익현이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그 휘하에서 소모장 겸 중군장으로 활동하였다.
1905년 이른바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분개하여 최익현을 찾아갔다. 최익현으로부터 영남 일대의 지사들을 규합하여 창의를 준비하도록 부탁을 받고, 영남 각지의 지사들에게 최익현의 친서를 전달하며 동지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스스를 ‘나라를 잃은 미친 백성’이란 뜻의 실국광민(失國狂民)이라 칭하고, 일광(一狂)이라는 호를 지었다.
1906년 봄 최익현이 정읍 태인에서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소모장 겸 중군장이 되어 병력증각과 전투 지휘에 힘썼으며, 호남과 영남의 의병세력을 규합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최익현의 의거 소식을 들고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같은해 6월 의병부대의 규모를 800여명에 달하였다. 6월6일 태인에서 순창 구암사로 부대롤 옮기고, 곡성까지 진출하였으나 6월11일 순창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