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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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배려로 따뜻하게 함께 살아가는 우리
  • 선생님 :
  • 학생수 : 남 13명 / 여 10명

고창 선운사

이름 4310 등록일 22.05.03 조회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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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동지장보살 좌상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 좌상은 청동 표면에 금칠을 한 지장보살상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를 말한다.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이 사라지고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부처이다.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불상의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 넓적하고 편평한 얼굴, 형식적이고 수평적인 옷 주름 처리 등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불상은 일제 강점기에 도난을 당하게 되는데, 불상의 영험함으로 인해 다시 선운사에 모셔지게 되었다. 일본으로 도난당한 지장보살상은 불상 주인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나는 본래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 보내 달라”라고 하였으나 불상의 주인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점차 가세가 기울고 병이 들게 되자 불상 주인은 불상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기에 이른다. 그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마지막으로 불상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이 고창 경찰서에 신고하고 반환함으로써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도난당한 지 2년 만에 선운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위 사진은 1938년 11월 반환 당시를 기념하는 사진과 이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2. 대웅전

 

선운사는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진흥왕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고승 검단선사가 세웠다는 두가지 설이 전한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진흥왕이 세우고 검단선사가 고쳐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선운사 대웅전은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하며, 현재 건물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다시 지은 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만든 기둥위의 장식구조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옆면에는 높은 기둥 두 개를 세워 간단히 처리하였다. 전체적으로 기둥 옆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뒤 너비는 좁아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 건물 뒤쪽의 처마는 간략하게 처리되어 앞뒤 처마의 모습이 다르며 벽은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널빤지벽이다.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천장을 설치하였고 단청벽화가 매우 아름답다.

조선 중기의 건축답게 섬세하고 장식적인 구성과 빗살 여닫이문이 화려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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