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틀림없이 다르다'
다른 우리가 만났어요! *^^*
함께 꿈꾸고, 사랑하며 성장해가요!
방애인 글이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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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미름이 껏!!**^^ | 등록일 | 21.06.22 | 조회수 | 4 |
전주로 돌아온 방애인은 기전여학교 학생들로 기전신성회(紀全信聖會)를 조직해서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도하였고, 방과 후에 기전여학교 교사와 학생들로 전도대를 조직해서 전주 시내로 나가 전도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전도 중 거리에서 만난 고아와 걸인,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전주 시민들은 그가 어린 고아를 업고 숙소로 가거나 다리 밑에서 한센병환자(나환자)의 손을 붙잡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고 하며 그에게 거리의 성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당시 전주에는 1927년 전주여자기독교청년회(YWCA)가 서문교회를 빌려 사용하던 작은 고아원이 있었는데, 시설이나 재정이 열악해서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이에 방애인은 전주 서문교회 담임목사 배은희와 홍석호, 김선례 등 기전여학교 교사들과 함께 고아원 설립기금 모금운동에 나섰고, 1931년 12월 전주 서문교회와 인접한 윤락가에 기생집 한 채를 구입하여 고아원을 개원하였다. 이후 방애인은 기전여학교 사역과 고아원 사역을 겸하였는데, 과로로 건강이 나빠졌고, 가족 문제로 인해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다고 한다. 결국 병약한 몸으로 1933년 여름방학을 고향에서 보내고 전주로 돌아온 직후인 9월 16일 2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전주 서문교회에서 엄수되었고, 묘소는 전주 외곽 효자동 공동묘지에 조성되었다가 1999년 완주군 비봉면 전주서문교회 묘지로 이장되었다. 1934년 배은희가 쓴 『조선 성자 방애인 소전』이 출간되면서 방애인의 행적이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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