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2반

'우리 모두 틀림없이 다르다'

 

다른 우리가 만났어요! *^^*

함께 꿈꾸고, 사랑하며 성장해가요! 

꿈꾸며 사랑하고 함께 걷는 우리
  • 선생님 :
  • 학생수 : 남 13명 / 여 11명

김민준

이름 김민준 등록일 21.06.03 조회수 11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것으로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도 한다.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으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하였다. 명나라와 통하는 지방에는 우리 사신을 비롯해 명나라에서 오는 사신도 묵었기 때문에 건물보수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국가에 일이 생겼을 때에는 백성과 관아가 같이 의식을 행하였다.

전주 풍패지관은 전주서고를 지은 뒤 남은 재료로 조선 성종 2년(1471)에 서의헌을 고쳐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풍패지관의 정문은 주관을 앞면으로 하여 내삼문·중삼문·외삼문이 있었으나 원래의 내삼문 안쪽으로 축소되었다.

신주를 모셔두는 방인 감실에는 궐(闕)자가 새겨진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국왕에 대하여 예를 행하기도 하였고(망궐례), 조정에서 사신이 오면 이곳에 묵으면서 임금의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전주 풍패지관은 중앙에 주관이 있고 좌우에 동·서 익헌, 맹청, 무신사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주관과 서익헌, 동익헌, 수직사만 남아있다. 동익헌은 본래 서익헌과 같은 모습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남문에서 북문을 잇는 도로 개설시 동익사 일부가 잘려 나가면서 초석 일부가 남아있던 것을 1999년에 복원한 것이다. 주관 앞면에는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는데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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