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나들이 14기 입니다.
'너', '나'라고 부를수 있는 허물없는 친한 사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반 모두가 너나들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 올 한해 약속 ***
1. 책을 꾸준히 읽겠습니다
2. 자신감을 갖고 생활하겠습니다
3.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겠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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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민지 박예슬 | 등록일 | 20.10.30 | 조회수 |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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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먼저 보스니아 내전은 오랜 민족적, 종교적 반목으로 1992년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일어난 무력충돌입니다. 이 내전으로 보스니아는 유럽의 킬링필드라 불립니다. ?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에 속해 있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을 통치하던 티토 대통령(이 사진이 티토 대통렵입니다)이 1980년 서거하고(죽었고), 1989년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인 밀로세비치가 대통령이 되면서 세르비아계의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 및 탄압이 극도로 심해졌습니다. 결국, 1991년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에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까지 독립을 선언하며 유고슬라비아연방은 해체하였습니다. 1992년 3월에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신유고연방을 창설하였으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때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국민투표에 불참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 전쟁 과정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민은 이슬람교를 믿는 주민이 43퍼센트,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주민이 18퍼센트, 정교(지금의 기독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믿는 세르비아계 주민이 35퍼센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독립을 반대하면서 국민투표에 불참했고, 1992년 4월 유럽연합과 미국이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자, 이러한 갈등이 본격적인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곳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상황입니다) 당시 크로아티아와 격렬한 내전을 치르고 있던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을 선동해서 내전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보스니아를 침공해서 수도인 사라예보를 포위했습니다. (이 곳은 사라예보가 폭격을 당해 폐허가 된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내전을 일으킨 세르비아 민병대는 인종 학살, 무차별적인 도시 폭력 등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NATO)군이 개입하게 됩니다. 나토군에 의한 폭격이 세르비아의 수도까지 이어지면서 밀로세비치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협상하러 나오게 되었고, 1995년 데이턴 협정이 체결되면서 보스니아에서의 전쟁은 끝났습니다. ?내전 결과 및 피해상황 : 이 사건 때문에 유고슬라비아는 해체되었고, 400만명 중 40퍼센트가 난민이 되고, 약 20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곳은 약 2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희생자들의 묘비입니다) ? 현재 상황 : 현재도 내전의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으며, 무력충돌은 상당히 자제되고 있지만 오랜 역사적 반목과 희생자들에 대한 뼈속깊은 상처로 인해 보스니아 내전은 여전히 잠재성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간, 종교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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