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장

침묵-이해인 수녀의 시

맑고 깊으면
차가워도 아름답네
침묵이란 우물 앞에
혼자 서 보자


자꾸 자꾸 안을 들여다보면
먼 길 돌아 집으로 온
나의 웃음소리도 들리고
이끼 낀 돌층계에서
오래 오래 나를 기다려 온
하느님의 기쁨도 찰랑이고


‘잘못 쓴 시간들은
사랑으로 고치면 돼요.’
속삭이는 이웃들이 내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고마움에 할 말을 잊은
나의 눈물도 동그랗게 반짝이네


말을 많이 해서
죄를 많이 지었던 날들
잠시 잊어버리고
맑음으로 맑음으로
깊어지고 싶으면
오늘도 고요히
침묵이란 우물 앞에 서자


-시집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