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고 싶은 인물: 관창 그 까닭: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백제에게 맞섰지만 지고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다시 맞서 싸우는 용기가 대단하다.
이름: 관창 『官昌』 태어난 나라: 신라 출생 및 사망: 645~660
관창(官昌)[혹은 관장(官狀)이라고도 한다.]은 신라 장군 품일(品日)의 아들이다. 용모가 우아하였으며 젊어서 화랑이 되었는데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 16세에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숙하여 어떤 대감이 그를 태종대왕에게 천거하였다.
당 현경(顯慶) 5년 경신(서기 660)에 왕이 군대를 내어 당나라 장군과 함께 백제를 치는데, 관창을 부장으로 삼았다. 황산벌에 이르러 양쪽 병사가 대치하였는데 아버지 품일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뜻과 기개가 있다. 오늘이야말로 공명을 세워 부귀를 얻을 때이니 어찌 용기가 없을쏘냐?”
관창은 “그렇습니다.”라 하고, 즉시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 바로 적진으로 달려들어가 여러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었기 때문에 적에게 사로잡혀 산 채로 백제의 원수(元帥) 계백(階伯)의 앞으로 끌려갔다. 계백이 그의 투구를 벗기고 그가 어린 나이인데도 용맹한 것을 애틋하게 여겨, 차마 해치지 못하고 탄식하여 말했다.
“신라에는 빼어난 인물이 많구나. 소년조차 이러하거늘 장사들이야 어떻겠는가?” 이에 관창을 살려 보내도록 하였다. 관창이 돌아와서 말했다. “아까 내가 적진에 들어가서 장수를 베지 못하고 깃발을 뽑아오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다.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하리라.”
관창은 손으로 우물물을 움켜 마시고는 다시 적진에 돌입하여 맹렬하게 싸웠다. 계백이 사로잡아 머리를 베고는 그의 말 안장에 매달아 보냈다. 품일은 아들의 머리를 잡고 소매로 피를 닦아주며 말했다.
“내 아들의 얼굴 모습이 살아있는 것 같구나. 나랏일을 위해 죽었으니 후회가 없으리.”
전군이 그 광경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뜻을 다지고는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진격하니, 백제가 크게 패하였다. 대왕이 급찬의 직위를 추증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으며, 그 가족들에게 당나라 비단 30필과 이십승포 30필, 곡식 1백 섬을 부의로 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창 [官昌]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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