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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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나눔으로 행복한 교실
  • 선생님 : 000
  • 학생수 : 남 11명 / 여 12명

김정희

이름 박태선 등록일 21.06.24 조회수 50

김정희는 1786년 6월 3일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김정희는 어려서부터 말이나 행동을 아주 의젓 했다.

그는 옮고 그름을 스스로 가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해내고 말았다. 김정희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기를 좋아했다. 

주로 할아버지의 서재가 그의  놀이터였다. 

김정희는 청나라의 유명한 책들도 많아 어린 김정희는 그곳에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또 글 증조 할아버지의 서재에서는 영조 임금으로부터 받은 고서도 있었다. 김정희는 그를 워낙 잘 써서 이미 여섯 살 때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신동으로 유명했다. 나라 안에서 최고 벼슬인 영의정 채제공 대감이 우연히 일곱 살의 김정희가 쓴 입춘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드님은 장차 명필이 될 것이오. 라고 말했다.

채제공 대감은 김정희가 쓴 글씨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좋지만 문장을 공부하여 벼슬을 하도록 해라.

김정희는 채재공을 말을 깊이 새겨 들었다.

김정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으므로 여섯 살 때부터 한양에서 살았다. 김정애는 15살이 되었을때, 북학파의 대표적인 대학자인 박제가를 알게 되었다. 자네 의 뛰어난 글솜씨를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볼 것이야. 김정희는 학문에 몰두하여 24살 때 생원시에 급제 하였다. 김정희 의 글솜씨와 학문의 스승이 없을만큼 깊어졌다. 보다 넓은 지식으로 얻으려면 중국 학자들을 만나 봐야 되겠어 이러한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런 김정희는 중국 학자를 만나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배웠다. 김정희는 북경에 돌아와 중국의 역사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널리 알렸다. 또한 김정희는 비석 글씨를 연구한 경험을 살려 삼국시대의 비석 자료를 찾아다녔다. 이때 황초령과 푹 산에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연구하여 직접 (금석과안록) 이라는 책을 썼다 김정인 어렸을 때부터 스님을 좋아하였다. 스님은 그런 불교에 대해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도 그리 심한 그만 다른 학자들도 감히 김정일 따라 할 수가 없다. 김정희는 숟가락을 움직이는 법부터 점을 치거나 획을 긋는 법까지 매우 달랐다. 그래도 김정희는 자신의 그래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도 쉰 살이 되던 김정희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김정희는 거기서 많은 글과 많은 시와 많은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다시 다시 고향으로 들어와서 며칠 후 일은 한 살이 되던 나의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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