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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용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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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석용 | 등록일 | 19.05.17 | 조회수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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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용은 자 경항(敬恒) 호 정재(靜齋)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아버지는 봉선(鳳善), 어머니는 조양임씨로 1878년(고종15) 음 11월 29일 임실군 성수면 상동리 삼봉촌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손이 귀한 탓에 부친이 명산대천을 찾아 치성을 드렸는데, 어느 날 밤 폭우가 쏟아지며 번개불이 왼쪽 다리를 내리치는 꿈을 꾸고 그를 잉태하였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총명하기가 빼어나 10세 미만으로 문리에 통하고 17세인 1894년(고종31) 갑오농민전쟁 당시 김개남이 이끌던 동학군이 마을을 통과할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도망쳤으나 이석용만이 홀로 남아 농민군을 평하길, “그들은 소요를 일으키는 동병(動兵)이니 하잘 것 없다”고 하며 기색이 태연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일제의 조선 침탈 야욕은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조정을 친일내각으로 구성하였으며, 1905년(광무9)에는 고종황제를 위협하고 을사5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실제적인 일본의 통치국가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대한문 앞에서 궐기하던 우국지사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에 대세가 이미 기울어졌음을 깨달은 그는 오직 의병을 일으키는 것만이 구국의 길 임을 확신한다. 때마침 면암 최익현이 거의(擧義)하고자 태인 종성리(현 정읍군 산내면 종성리) 임병찬의 처소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에 동참, 본격적인 의병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나 거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순창에서의 패전과 의군 해산을 맞아 자력에 의한 의병 활동을 추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임실을 본거지로 인근 전라도 일원을 두루 다니며 동지를 규합하는가 하면, 일본을 규탄하고 민족의 주권을 되찾자는 각종 격문과 호소문 등을 발포하는데 주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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