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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공민왕

이름 안현서 등록일 26.06.26 조회수 7

고려의 공민왕

 

공민왕은 31대 고려의 왕이다. 고려가 원나라(몽골)의 간섭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공민왕은 원(몽골)의 그늘 아래 있던 고려의 개혁을 위해 노력한 왕입니다.

그럼 공민왕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첫째, 공민왕은 1330 충숙왕공원왕후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원나라 황실 출신은 아니었지만 그는 곧 원나라 조정의 압력에 의해서 원나라에 입조하게 됩니다. 1341(충혜왕 2) 원나라에 건너갔으며. 1344년 충묵왕 원년)강릉부원대군(江陵府院大君)에 봉해졌고, 1349(충목왕 1)에 원나라(몽골)의 황족인 위왕(魏王)의 딸 노국대장공주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둘째, 공민왕은 고려가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한 왕입니다. 그는 원나라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고, 원나라에 뺴앗겼던 쌍성총관부를 되찾아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또한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기 위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통해 공민왕은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셋쨰, 외적의 침입보다공민왕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황후 노국공주의 죽음이었습니다. 노국공주는 공민왕이 볼모로 원에 끌려갔을 때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 함께 고려에 온 노국공주는 공민왕이 외롭고 힘들 때 늘 곁을 지켜주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민왕이 매우 사랑한 노국공주가 아기를 낳다 죽고 말았습니다.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공민왕릉에는 노국대장공주의 무덤과 함께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한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공민왕은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고자 반원(反元) 정책을 펼친 고려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불리는 한편, 아내 노국대장공주의 죽음 이후 고려의 멸망을 가속화시킨 암군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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