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학급누리집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년.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소중한 빛깔을 가진 3명의 빛돌들이. 빛돌에게 안겨줄 햇살을 가득 품고 있는 토마토 선생님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3학년을 보내려고 합니다. 한 해동안 지내며 서로 부딪치고 깨지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큰 배려심과 우정을 쌓으며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를 배려하는 가치 있는 삶을 이루길 바랍니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눈부신 보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고려의 공민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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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안현서 | 등록일 | 26.06.26 | 조회수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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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공민왕
공민왕은 31대 고려의 왕이다. 고려가 원나라(몽골)의 간섭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공민왕은 원(몽골)의 그늘 아래 있던 고려의 개혁을 위해 노력한 왕입니다. 그럼 공민왕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첫째, 공민왕은 1330년 충숙왕과 공원왕후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원나라 황실 출신은 아니었지만 그는 곧 원나라 조정의 압력에 의해서 원나라에 입조하게 됩니다. 1341년(충혜왕 2) 원나라에 건너갔으며. 1344년 충묵왕 원년)에 강릉부원대군(江陵府院大君)에 봉해졌고, 1349년 (충목왕 1년)에 원나라(몽골)의 황족인 위왕(魏王)의 딸 노국대장공주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둘째, 공민왕은 고려가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한 왕입니다. 그는 원나라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고, 원나라에 뺴앗겼던 쌍성총관부를 되찾아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또한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기 위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통해 공민왕은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셋쨰, 외적의 침입보다도 공민왕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황후 노국공주의 죽음이었습니다. 노국공주는 공민왕이 볼모로 원에 끌려갔을 때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 함께 고려에 온 노국공주는 공민왕이 외롭고 힘들 때 늘 곁을 지켜주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민왕이 매우 사랑한 노국공주가 아기를 낳다 죽고 말았습니다.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공민왕릉에는 노국대장공주의 무덤과 함께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한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공민왕은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고자 반원(反元) 정책을 펼친 고려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불리는 한편, 아내 노국대장공주의 죽음 이후 고려의 멸망을 가속화시킨 암군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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