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1반

5학년 학급누리집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소중한 빛깔을 가진 3명의 빛돌들이빛돌에게 안겨줄 햇살을 가득 품고 있는 토마토 선생님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3학년을 보내려고 합니다한 해동안 지내며 서로 부딪치고 깨지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큰 배려심과 우정을 쌓으며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를 배려하는 가치 있는 삶을 이루길 바랍니다자신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눈부신 보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빛이 나는 돌이 되자!
  • 선생님 : 문호영
  • 학생수 : 남 1명 / 여 2명

경복궁

이름 강태양 등록일 26.06.15 조회수 4

경복궁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왕조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으로 태조 4(1395)에 한양(서울)으로 수도를 옮긴 후 처음으로 세운 궁궐이다.

궁궐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景福크나큰 복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는데, 경회루 남측의 궐내각사 권역에 집현전을 짓고 학자들을 가까이 하였다. 또한 경회루의 남쪽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보루각을 세웠으며, 궁궐의 서북쪽 모퉁이에는 천문 관측시설인 간의대를 마련해 두었다. 또한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4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륜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경복궁은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그러나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벌어지고,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 궁궐의 대부분을 훼손함에 따라 점차 궁궐의 제 모습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궁궐 안에 남아있던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 등이있다.

중국에서 고대부터 전해 오던 도성(都城)도읍(수도)의 둘레에 쌓은 성을 뜻하며,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을 지킨 궁궐로서, 궁궐의 왼쪽(동쪽)에는 역대 왕들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오른쪽(서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의 법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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