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고 예의바른 어린이^0^
남색모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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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남색모듬 | 등록일 | 19.06.18 | 조회수 | 31 |
조희제 선생은 항일 의병과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 행적을 모아 기록했다. 그것이 ‘염재야록’이다. 염재야록에 을미사변과 한일합방 전후,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항일 운동을 펼치거나 절개를 지키다 순절한 이들의 행적을 정리해 담았다. 을미사변, 을사늑약, 한일합방 등의 전말과 각종 상소문과 격문·통문 등도 담았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길이 남겼다.
조희제 선생의 본관은 함안이다. 자는 운경(雲卿)이고 호는 염재(念齋)다. 1873년 12월10일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절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참봉 조병용(趙柄鏞)이다. 국가보훈처와 변주승 전주대 교수에 따르면, 조희제 선생의 아버지 조병용은 항일의식이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의병을 일으켜 북상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평소 거리낌 없이 일본을 배척하는 발언도 했다고 전해진다. 조희제는 상당한 재력도 있었다. 회문산 산세를 활용해 숨어 활동하는 의병과 임실·순창·남원 등지에서 활약하는 의병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다. 조 선생의 집에는 의병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일본 경찰의 감시도 삼엄했다. 조희제 선생은 의병활동을 지원하고 가산을 털어 옥고를 치르는 애국지사들을 뒷바라지도 했다. 조희제 선생은 위험을 감수하고 수십 년 동안 독립투사들의 항일사적과 애국지사들의 충절 기록을 모아 염재야록을 편찬했다. 조 선생은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조희제 선생은 수십 년에 걸쳐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항일투쟁 사실을 모았다. 법정에서 애국지사들이 재판을 받는 과정도 방청하며 기록했다. 염재야록 편찬 과정에는 여러 사람이 참여해 1931년 건(乾)·곤(坤) 두 책으로 구성된 염재야록 초고가 완성됐다. 출처 : 시사저널e - 온라인 저널리즘의 미래(http://www.sisajournal-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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