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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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유태윤 | 등록일 | 26.06.23 | 조회수 |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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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영조는 1694년에 태어나서 1776년 까지 살았다. 영조는 조선 왕조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왕이다. 탕평책을 통해 과열 된 붕당간의 경쟁을 완화했다. 노론의 도움으로 왕자를 차지 했지만 붕당간의 경쟁의 폐해을 온몸으로 겪었던 영조는 왕권을 강화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탕평책을 만들었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영수를 불러 화목을 권하고 호흥을 하지않은 신하들을 축출하고 노론과 소론 중 탕평책을 따르는 자 들만 등용했다. 영조는 이러한 노력으로 중앙정계에는 노론, 소론, 남인, 소북 등 사색당파가 고르게 등요되어 정국을 운영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조의 왕권 자체가 노론의 지지로부터 비롯 되었기 때문에 영조는 모든 붕당에 공평하게 정국을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영조가 탕평책을 쓰지만 소외된 일부 소론 층의 불만을 불식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도세자 였다. 영조의 분노와 소론을 제거 하고자 이 사건을 해결 하자고 했다. 하지만 불이익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영조는 자신에 콤플렉스 때문에 편애가 심하던 세자를 멀리하게 되었고 세자도 궁내에서 칼을 휘둘러 궁녀를 죽이거나 비정상적인 일들이 모여 갈등의 골을 심화시켰다. 노론은 세자를 폐위 하고자 세자를 불러들인 영조는 분노 속에 아들에게 자결을 명했지만 세자가 이에 응 하지 않아 서민으로 강등 시키고 한여름 뒤주속에 사도세자를 가두어 8일 만에 굶어 죽게 했다. 아주 참혹한 비극이 였다. 마지막으로 영조는 균역법을 사용하며 균역을 대신 해 남포의 양을 1필씩 감하여 백성들의 부담감을 경감 시켜주고 농가집성등의 책을 널리 보급하는 등 민생안전에 도움을 줬고 학문과 문화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영조가 자연사를 하고 정조가 영조의 뒤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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