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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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가은 | 등록일 | 20.05.13 | 조회수 | 9 |
불교의 발달과 대중화 삼국 통일 후 신라는 고규려와 백제의 문화를 흡수하고, 당의 받아들였다. 이로써 문화의 폭이 확대되고, 민족 문화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삼국 시대에 받아들인 불교는 통일 신라 때에 의상과 원효 같은 승려의 의해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원효는 "모든 것이 오직 한마음에서 비롯된다" 는 일심 사상을 내세웠고, 여러권의 불교 관련 책을 지어 중국과 일본에서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 원효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불교를 전파하였다. 그 결과 일반 백성들까지 부처를 알게 되어 불교가 신라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해초는 진리를 탐구하고자 직접 인도에 다녀왔고, 그 경험을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유학의 보급과 학문의 발달 통일신라에서는 불교가 지배적인 종교였으나, 왕권 강화와 국가 체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정치 이념으로 유학이 강조 되었다. 신문왕은 국립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하고 유학을 더욱 전문적으로 가르치도록 하였다. 원성왕 때에는 이러한 유학 교육을 토대로 관리를 채용하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강수는 외교 문서를 잘 작성하여 삼국 통일에 기여하였으며, 설총은 이두를 정리하여 한자의 뜻과 음으로 우리말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김대문은 "화랑세기" 등을 지어 신라의 전통문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신라에서는 많은 유학생이 당에서 공부하였으며, 이들 중 당의 빈공과에 합겨가여 당의 관리가 된 인물이 많았다. 신라의 최치원은 당에서 뛰어난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불교 예술의 발달 삼국 통일 후 신라에서는 불교가 융성하면서 다양한 불교 예술이 발달 하였다. 특히 8세기 중엽에 세워진 불국사와 석굴암은 불교 예술의 극치를 이루었다. 불국사는 건ㅁㄹ과 석탑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말 그대로 '불교의 나라 (불국)' 를 표현하였다. 석울암은 돌을 쌓아 만든 인공 석굴 사원으로,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둥근 벽면에 새긴 여러 조각이 완벽한 통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탑은 주로 3층으로 쌓은 석탑이 유행하였고, 삼국을 통일한 산라인의 자신감을 보여 주는 경주 감은사지 3층 석탑,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등이 유명하다. 그밖에 복잡하고 화려하면서도 균형 잡힌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독트간 모양의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 등은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신라 말기에는 선종이 널리 퍼지면서 승려의 사리를 넣은 승탑이 유행하였다. 범종으로는 비천상 무늬와 은은한 종소리로 높이 평가받는 성덕 대왕 신종, 현존하는 범종 중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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