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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운 교감선생님의수필-서러움이 꽃이되어
작성자 *** 등록일 11.09.17 조회수 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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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9월16일 전북일보 금요수필 코너에 실린 송병운교감선생님의 수필 '서러움이 꽃이 되어' 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며 살아온 세월에 한이 맺혔을까. 슬그머니 꽃대를 올려놓았다. 아내가 물을 주려다 우연히 발견할 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베란다의 화분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문주란이 장맛비와 함께 꽃을 맺은 것이다.

1990년 가을이던가. 제주도 성산일출봉 밑에서 문주란 씨앗을 구했다. 동행했던 직원이 사준 것인데 집에 와서 심었더니 네 개가 싹이 텄다. 그 중 두 그루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 별다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잘 자라는 것도 아니고 세월이 흘러도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면 키우고 죽으면 버리겠다며 한 쪽에 팽개쳐 놓았다. 하지만 이사를 갈 때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슬그머니 올라왔던 꽃대가 서서히 모습을 달리 하더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문주란 꽃을 사진으로만 봤지 실제로는 본 적이 없어 호기심이 일었다. 처음 꽃대를 보았을 때는 진한 녹색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밝은 색으로 변하였다. 마침내 꽃을 피울 즈음에는 거의 노란색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피어오른 꽃은 할머니 머리처럼 새하얀 색깔로 춤을 추었다. 꽃대는 하나였는데 꽃은 열두 송이나 피었으며 분홍색 꽃술과 하얀 꽃잎이 어울려 불꽃놀이를 하는 모습 같았다. 신기해서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꽃은 생각보다 훨씬 품위가 있고 의외로 향기마저 진하였다. 거실에 내뿜는 향기가 그렇게 은은할 수가 없었다. 꽃대가 올라와서 피고 질 때까지 우리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귀한 몸이 되었다. 마치 옛날의 여인네들이 아들을 낳으면 처지가 변하는 것처럼 이제는 예전의 그 문주란이 아니었다.

20년 넘게 사랑 한 번 받지 못했었다. 존재감이 없어 물도 제대로 얻어 마시지 못하였다. 옆 화분에 물을 주면서 마지못해 한 번씩 주었을 것 같다. 배신감을 느끼고 업신여김에 서러움도 컸으련만 용케도 살아왔다. 이렇게 푸대접을 할 바에는 제주도에서 그냥 살게 놔두지 왜 전주까지 데려왔느냐고 대들고도 싶었을 것 같다. 그래도 물 한 모금 얻어 마신 것을 은혜로 생각했던가. 우리 인간이라면 뒤돌아보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유난히 예쁘고 진한 향기를 내뿜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22년 동안의 아픔과 서러움이 오죽이나 컸을까. 그러나 그 녀석은 한을 한으로 풀지 않았다. 주인의 무관심과 구박으로 아픈 세월을 보냈건만 오히려 사랑으로 보답하였다. 서러움을 꽃으로 피운 것이다.

제주도에 가면 문주란의 군락지인 '토끼섬'에 가보련다. 그곳에 사는 고향 친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다 이 가련한 문주란에게 보여 주고 싶다. 이제는 천연기념물로 신분상승이 되어 예전의 너처럼 맘대로 올 수 없고 '청순함''정직'이라는 꽃말도 있다고 알려 주련다.

이 녀석은 고향하늘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토끼섬의 시원한 바다를 구경조차 못하였고 파도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삶의 도리인지를 보여 주면서 우리 집 베란다에, 그리고 내 카메라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수필가 송병운 씨는 2009<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전주 성심여고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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